츠나요시가 있는 곳은 어둠의 한 중간이었다. 소리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츠나요시의 볼품없는 신체만이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스스로도 어이없을 만큼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츠나요시는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죽어봤어야 알지.’

 이때까지 수백 수천 번을 미간 한 가운데에 총을 맞았으니까 죽어본 적이 아주 없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도 이미 아득한 옛일이다. 츠나요시는 눈앞에 스스로의 과거가 펼쳐지는 것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새까만 화면에 마치 영화가 상영되는 것처럼 장면이 하나하나 지나간다. 십 년도 더 지났는데도 얼굴이 확확 붉어지는 부끄러운 일도 있는가하면 아, 저땐 저랬었지, 하고 그리움이 물씬 풍겨오는 정경도 있었다. 마냥 앳되기만 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자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이게 주마등이란 건가.’

 죽기 직전에 필름을 빨리 되감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던데 죽고 나서도 볼 수 있다니. 헛웃음 했지만 소리는 어둠에 먹혔다. 뒷머리가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츠나요시는 다시 온 몸에 힘을 뺐다. 기억으로 빛나던 곳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간다. 차라리 여기서 부유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죽고 나서도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

 고독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한 공간에서 쓸쓸히 남겨졌는데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남아있다니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마피아 보스라는 핑계로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펄펄 끓는 열탕도, 살갗을 꿰뚫는 가시밭길도 없었지만 츠나요시가 있는 곳은 지옥임에 틀림없었다. 동료들을 사선으로 밀어 넣은 츠나요시에 대한 염라대왕의 형벌은 영원한 고독이었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울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반 억지로 시작했다지만 선택은 언제나 츠나요시의 몫이었다. 변명의 여지란 어디에도 없었다. 지독하게 고독했다. 한 중간인지 한 구석인지 모를 암흑 속에서 츠나요시는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묻었다.

 

 “꼴사납군요.”

 긴지 짧은지 알 수 없는 잠에서 츠나요시를 건져 올린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파묻었던 고개를 살짝 들자 까만 옷에 쌓인 긴 다리가 보였다. 전체를 보기 위해 느릿하게 얼굴을 올렸다. 한심하다는 듯 뒤틀린 웃음을 짓고 있는 잘 생긴 남자가 거기 있었다. 죽어버린 사람도 열 받게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로쿠도 무쿠로다.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 하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저 누가 손 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립니까.”

 분하지만 사실이다. 자기가 봐도 그의 말대로 꼴사나웠다. 하지만 로쿠도 무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육도를 돌며 환생할 수 있는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버리고 나서 무엇인가를 하려 해도 할 수단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갇힌 마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네가 뭘 알아!”

 울컥함이 몸을 일으켰다. 영혼마저도 시체마냥 쳐져있던 츠나요시의 몸에 불이 켜졌다. 어디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박차고 달려 나갔다. 비록 불꽃은 타오르지 않지만 생전의 버릇으로 주먹을 꽉 쥔 채 팔을 앞으로 뻗었다. 츠나요시가 모든 동작을 시행하는 동안 비웃는 그 자세 그대로 꿈적도 않던 무크로는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하는 것으로 응대했다.

 “여긴 리본도 없어!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라!!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해야 올바른 건데!!!”

 헛방질의 연속. 무크로는 마치 춤추는 것 같았다. 뒤로 스텝을 밟고 상체를 가볍게 스윙하며 박자도 몸놀림도 엉망인 츠나요시의 분노를 흘려보낸다. 무슨 짓을 해도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듯이. 결국 츠나요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디쓴 좌절감만을 맛보았다.

 “발악은 이게 답니까?”

 여유로운 목소리가 얄밉다. 리본 없이, 아무런 능력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새삼 깨달은 츠나요시는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며 자위하는 수밖에 없었다. 털썩 주저앉자 눈앞의 무크로가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크로도 인식했는지 서서히 사라져가는 양손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당신이 왜 이렇게 되었냐고요? 간단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손 놓았기 때문이에요.”

 츠나요시는 귀를 틀어막았다. 끔찍한 정적의 어둠이 완전히 자신을 감쌀 때까지, 츠나요시는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벗어날 수 없는 츠나요시와 달리 육도 윤회의 능력을 가진 무크로는 이동이 용이한 듯했다. 어느 새인가 나타나서는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여러 번. 사후 첫 만남 이후 한동안은 무크로가 나타나든 말든 무시로 일관하던 츠나요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만 보이는 길이 있는 걸까. 문득 인 궁금증에,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열심히 고민해 보았지만 뾰족이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상처를 매개체로 빙의한다는 건 알았어. 근데 그 순간 유체 이탈이 일어나는 거야? 너의 본체가 쓰러진다 싶으면 곧바로 다른 누군가에게 들어가 있잖아.”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고쿠요 중학 교복을 입고 나타난 무크로에게 질문을 툭 던지자 오드아이가 조금 커졌다. 호오, 사람 죽어봐야 아나요, 당신처럼 머리 나쁘고 게으른 사람이 스스로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닥쳐 무크로.

 “정말이지 마피아란. 당신이 그렇게 입이 더러워진 것도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어깨를 으쓱하던 무크로였지만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보며 츠나요시는 그의 말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다 철회했다. 고유 능력이라지만 육도 윤회라는 것 자체가 죽고 난 후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죽어도 여러 번 죽었지만 무크로는 어디까지나 로쿠도 무크로였다.

 “문이 여러 개 있다고 보면 되겠군요.”

 의외로 무크로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 츠나요시가 상상함과 동시에 적막했던 공간에 각양각색의 문이 생겨났다. 무크로도 볼 수 있었는지 다시 한 번 호오, 하고 감탄했다.

 “제법 비슷하군요. 제가 누군가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은 바로 이 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각각의 문이 누군가로 연결되어 있는지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되는 거죠.”

 친절한 무크로라니. 츠나요시의 팔에 닭살이 오도독 돋았다. 무크로도 거기에 눈치 챘는지 잠깐 식은 눈빛을 던졌다.

 “기껏 알려줬더니 태도가 그 모양입니까? 이래서 마피아란...”

 너도 마피아거든. 츠나요시는 혀 위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꿀꺽 삼켰다. 이제 죽었다는 사실에는 무덤덤해졌지만 무크로라면 영혼까지 분쇄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 알려 줘도 되는 거야?”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니까요. 안다고 해서 어떻게 될 일이 아니란 겁니다.”

 사실이었다. 요령을 알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츠나요시의 손은, 가장 근처에 있던 문고리를 가볍게 통과했다. 관자놀이 부근이 욱신거렸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경우 문이 아예 사라지기에 빙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빙의가 가능하다고 하면, 원래 그 몸의 주인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무크로도 그것은 모른다고 했다. 그의 능력이 강력한 이유는 몸의 주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처를 입힌 순간 주도권을 손에 쥔다는 것이다. 문고리는 무크로 측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그가 들어서는 순간 원래의 영혼은 무의식의 바다에 잠겨 버리는 듯했다. , 무크로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마주 볼 수도 없다는 소리다. 츠나의 마지막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꽤 담담하군요.”

 무크로의 말대로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원래 자신은 이런 인간이다. 리본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난 후 조금은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근본 어디 가지 않는 법이다. 힘든 게 싫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근성. 그게 바로 사와다 츠나요시, 다메츠나였다. 실제로도 리본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러한 삶에 안주하고 있었다.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를 얻고 그들과 함께 여러 험난한 산을 넘어왔지만 죽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죽을 때, 그리고 죽고 나서는 결국 혼자다. 사와다 츠나요시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솔직히 네가 아무리 비난해도 말이야, 죽고 나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당연한 거잖아. 내가 왜 가만히 있는 다고 욕을 먹어야 하냐고.”

 츠나요시는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정말 솔직한 본심이었다. 무크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츠나요시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을 홀로 썩지도 못한 채 견디는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크로가 간간이 나타나는 짤막한 시간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형벌이었다.

 “...죽고 나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무크로의 미소에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살짝 입 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내리까는 그 표정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사방을 둘러 싼 새카만 스크린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설렁설렁 과거를 훑던 츠나요시는 불현듯 무크로가 자취를 감추기 전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크로는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

 “무크로.”

 한층 낮아진 목소리에 이끌리듯 이름의 주인이 시선만을 던졌다. 아직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남아있지만 붉고 푸른 오드아이는 고요했다. 그의 눈동자는 깨끗하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츠나요시 앞에 나타나는 무크로의 눈동자에는 단 한 번도 께름칙한 글자가 새겨진 적이 없었다. 답은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정말로 죽은 거야?”

 그에게 빙의된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츠나요시가 보아온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몸의 주도권만 가져온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정신이란 상당히 섬세해서 면역 체계처럼 익숙지 않은 불순물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할 테니 신체에 가해지는 리스크가 크다. 아무리 무크로가 타인의 신체를 일회용 장난감처럼 여긴다지만 그래서는 그의 능력조차 발휘할 수 없다. 무크로가 문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퓨즈가 나가는 것처럼 자아가 가라앉는 것만이 정신과 신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츠나요시에게 남겨진 사항은 두 가지. 그가 정말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중에 무크로를 만난 것이거나, 혹은.

 “아무래도 이야기 상대가 있다는 건 당신에게 썩 좋은 일이 아닌 것 같군요.”

 무크로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자취를 감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안이 벙벙하던 츠나요시의 등골을 타고 싸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만약 무크로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 무크로?”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조차 반향 되지 않는 공간에 츠나요시의 목소리가 닿는 유일한 존재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장소에서 츠나요시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이었다. 그가 정말 죽었든 아니든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츠나요시 곁에 남는 것은 외로움뿐이다. 머리 전체를 꽉꽉 조이는 두통마저 잊게 하는 절망감이 전신을 감쌌다.

 

 “꼴사납군요.”

 이대로 어둠에 동화되지 않나 싶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은 자세 그대로 얼마나 있었는지조차 잊을 만큼. 그래서 두상에서 떨어진 목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정말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을 줄은.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살짝 고개를 들자 기시감이 엄습했다. 훤칠하게 뻗은 긴 다리. 천천히 고개를 들자 20대의 무크로가 비틀린 웃음을 띠고 츠나요시를 내려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빛나는 오드 아이는 깨끗했다.

 “...크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성대는 흉측한 소리를 냈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삐걱거리는 관절을 어떻게든 움직인 츠나요시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눈앞에 나타난 존재가, 미쳐버린 머리로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다.

 바르르 떨리는 손끝이 간신히 옷자락을 집는 순간, 츠나요시 안에 가득 쌓여있던 무언가가 터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무크로, 무크로, 무크로.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눈앞에 실재하는 존재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며 손에 힘을 주었다. 두 번 다시 놓고 싶지 않았다. 올지 오지 않을지 기대하는 것도 괴로웠지만 무한한 어둠 속에 홀로 버려진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무크로가 한쪽 무릎을 꿇고 츠나요시와 눈높이를 맞췄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나 경멸하던 마피아의 보스가 마치 구걸하듯 매달리는 모습이 통쾌한 걸지도 모른다. 허나 이제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은 츠나요시에게 자존심이란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이 무한 지옥을 조금이나마 버틸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는 로쿠도 무크로가 유일무이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여전히 작고 말라빠진 신체를 무크로가 감싸 안는다. 제정신이었다면 기겁하고 물러났을 츠나요시는 오히려 몸에 힘을 빼고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하얀 셔츠에 코끝을 묻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초점이 풀린 다갈색의 눈동자가 스륵 감기는 눈꺼풀 뒤로 사라졌다.

 “전부 버리고 전부 잊고서 제 것이 되어 버리면 됩니다.”

 나지막이 중얼거린 무크로의 목소리는, 그러나 츠나요시의 귓가를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너무 힘이 들어간 탓에 하얘진 작은 손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움켜쥔 바지 자락을 한층 더 세게 쥐었다.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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