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슌기쿠 작 '하이브리드 차일드' AU

 

 

 

 

 거위는 꿈꾼다, 알에서 나갈 그 날을.

 

 

 아서가 그를 발견한 것은 스물여섯 번째로 탈주했을 때였다. 아직 15살밖에 안 되었다고 하는데, 할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외출 혹은 놀이 금지라는 혹독한 조치에 결국은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할 일이란 곧 국내 및 국제 경제 동향 파악, 사회나 수학, 국어 같은 일반적인 학과 공부 후 특별 경영 수업, 그리고 승마와 펜싱을 뜻했다. 제 몸은 하나입니다!! 라고 외쳤으나 외면당하기를 수차례, 무작정 뛰쳐나왔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갤러해드의 비웃음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대로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스스로가 비참해서 결국 또 달려 나오고야 말았던 그 때였다.

 “?”

 아서가 선택한 길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것도 잡동사니가 잔뜩 버려져있는 숨을 곳도 없는 곳. 결국은 오늘도 얌전히 잡혀가서 엘의 잔소리 폭격을 받아야 할 걸 생각하고 우울함에 잠겼는데, 매우 부자연스러운 커다란 물체가 그의 눈에 띄었다.

 “, 사람??”

 쓰레기더미에 기대듯 쓰려져있는 인영에 아서는 덜컥 겁부터 먹었다. 요즘 세간을 흉흉하게 만드는 연쇄 살인범이 있다는 뉴스가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외진 곳이다 보니 시체를 유기하기에도 적당해 보여서 아서는 그때서야 자기가 얼마나 철없이 행동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사람의 호기심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면 기를 쓰고 보게 된다. 끔찍하다 하면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자극적인 이슈기 마련이다. 아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꼴깍, 침을 삼키며 아서는 천천히 다가갔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지만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죽은 게 아니고 실신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빨리 확인하지 안 된다. 아무리 주어진 일을 따르기 싫어 도망 나왔다지만 자신은 아서 팬드래건. 팬드래건 집안의 차기 가주다. 눈 꼭 감고 심호흡을 한 번. 좋아. 남자라면 하는 거다.

 매도 빨리 맞는 게 꼭 맞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여 알고 있는 아서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뻣뻣하게 굳은 팔다리로 척척 걸어간 아서는 흑백의 머리칼을 앞으로 늘어뜨린 사람의 형체 앞에 섰다.

 마음을 먹긴 먹었는데 역시나 시체면 어떡하지. 쉽사리 손이 나가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어.

 아직 아무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하지만 곧 아서를 쫓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못 본 체 하려면 당장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아서는 돌아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살인자.

 

 세 번째를 내딛으려던 발이 멈칫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붙들고 있었다. 이마 위를,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방치해서 저 사람이 죽어버린다면.

 “으 정말이지! 전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건가요?!”

 머리를 한 번 쥐어뜯은 아서는 휙 돌아서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

 소름끼치는 싸늘함에 반사적으로 손을 떼자 그 반동으로 사람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친 아서는 다음 순간 자신이 도망가는 중이었으며 무엇 때문에 심란했는지 싹 잊어버렸다.

 “우와.. 이쁘다...”

 흰색과 까만색으로 나누어진 머리카락 뒤에 숨겨져 있던 얼굴은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단정한 눈썹에 감겨있지만 유려한 눈매, 오똑한 코, 그리고 적당한 두께의 입술. 피부는 창백했지만 좌우 대칭이 완벽하여 조화미를 뽐내는 그 얼굴에 아서는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서 또래의, 그보다 조금 작은 체구를 가진 소년이었다. 그 몸을 폭 감싸는 옷에 흠집이나 지저분함도 없어서 꼭 그 자리에 생겨난 것 같다. 이제는 두려움도 잊은 채 아서는 조심조심 소년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차가워... 근데 부드럽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아서는 이번엔 소년의 얼굴 왼쪽에 새겨진 검은 문신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형태의 그것은 문양 같기도 했고 아무렇게나 휘갈긴 선 같기도 했다.

 “저기.. 혹시 살아는 있..는 건가요?”

 “바보 아냐. 죽었으면 대답할 리 없잖아.”

 떨리는 목소리도 한심했지만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게 어리석다 생각하며 헛웃음을 짓는 아서의 등 뒤에서 마치 그의 마음이 나레이션으로 전환된 것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아서는 세상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하이브리드 차일드다.”

 장장 다섯 시간의 설교 이후 엘은 홍차를 맛있게 마시며 아서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맞은 머리를 아직도 문지르던 아서는 낯선 단어에 눈을 크게 떴다.

 “하이브리드 차일드?”

 “그렇다. 사람이 발명해 낸, 인공물이다.”

 엘의 설명에 의하면 하이브리드 차일드는 인형처럼 생겼지만 돌보는 사람의 애정과 헌신으로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유기 생명체였다. 성장은 개체별로 차이가 나는데, 그건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 금방 눈을 뜨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몇 년 몇십 년이 걸려도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소한 단어에 생소한 내용. 그렇게나 억지로 세상을 배우고 있는데도 이렇게 참신하고 혁신적인 것을 모른다는 사실에 아서는 가볍게, 아니 꽤 충격을 받았다.

 “네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모르는 게 당연할 거다. 보편화되지 않은 거니까.”

정식 출시가 되지 않았다고 해야겠지만. 엘의 말에 더욱 알쏭달쏭해진 아서는 시선으로 물었다. 그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악용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 아서는 납득했다. 이른바 백지인 것이다. ‘주인을 그대로 투영하는 존재, 하이브리드 차일드. 아서는 자는 것처럼 누워있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한눈에 봐서는 사람하고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데. 아서는 자기만이 구분하지 못한 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흘끗 엘을 쳐다봤다. 아서를 발견한 갤러해드는 이런 것 정도로 허둥대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으니 단번에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유기 생명체는 갤러해드가 가장 관심 있어 하고 독자적으로 연구까지 하는 분야니까 그녀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차일드마다 각각 다른 문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 형태를 보건데 확실하다.”

 엘은 자신의 왼쪽 뺨을 톡톡 두드렸다.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날카로우면서도 곡선으로 이루어진 모양은 하이브리드 차일드 발명가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쩔거냐?”

 “?”

 “어쩔 거냐고 물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왔다고 했으니 필시 눈을 뜨지 않으니 기다리다 지친 누군가가 버린 걸게다. 결코 싼 물건이 아닌데도 그렇게 내팽겨 친 걸 보면.”

 물건, 이라는 단어에 아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굳이 따지자면 범주에 포함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연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얻지 않았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차일드를 그렇게 쉽게 가졌다 버릴 수 있는 물건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제가 책임져야 할 상황 같은데요.”

 깨달았을 때엔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네요.”

 아서는 웃었다. 그의 앞에 앉아있는 인영은 아무런 대답도 없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그날의 하이브리드 차일드는 아직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래서야 버려지는 게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드레드씨를 처음 산 누군가는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해주지 않으니 지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날 이후 아서는 모드레드라는 이름을 선사하고 정성껏 돌봤다. 돌봤다고 해봤자 매일 인사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며 망가지지 않을 만한 장소에 두는 것 정도였지만. 일과에 한 가지 일이 더 추가된 덕분에 아서는 그 이후 두 번 다시 탈주하기 않았고, 하이브리드 차일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갤러해드와 공동 연구를 진행한 덕택에 유기 생명 과학 분야에서는 꽤 업적을 쌓기도 했다.

 아서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모드레드는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하이브리드 차일드와 달리 모드레드는 영양소라 불리는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는 쑥쑥 커졌다. 불과 4년인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키는 어느 덧 아서의 키를 훌쩍 넘어 있었다.

 “정말이지, 난 먹고 마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째서 모드레드씨만큼 크지 않는 거야.”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지만 설마 인간과 하이브리드 차일드간에도 존재하는 개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삐죽거리던 아서는 스스로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드레드를 향해 혀를 날름 내밀었다.

 꿈틀.

 “?”

 모드레드의 손가락이 움직인 것 같았다. 아서는 혀를 내민 그 상태 그대로 굳어져 뚫어져라 직시했지만 갤러해드의 도움을 받아 앉힌 그 자세 그대로였다.

 “우와.. 이제 헛것도 보이나봐.”

 원래 우월하게 제작된 모드레드의 용모는 성장하면서 더욱 잘생겨졌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대비되는 머리카락에 가려지는 게 싫어 일정한 길이로 다듬어주기까지 할 정도로. 엘은 혀를 내둘렀지만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식이어서 크게 참견하지는 않았다.

 “저기 모드레드씨. 저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당신의 눈동자는 무슨 색일까요? 아서는 모드레드의 코앞까지 자기의 얼굴을 들이대고 물었다. 언젠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때 눈꺼풀을 들어 올려보면 되지 않냐며 갤러해드가 면박을 주었지만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아서는 이때까지 모르고 지냈다. 아무리 모드레드가 하이브리드 차일드라지만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스스로 눈 뜨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목소리도.”

 하이브리드 차일드는 성장 매커니즘이 베이스인 인간과 비슷해서 외관처럼 목소리도 바뀐다고 했다.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만나 본 한 경우는 1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주인을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한 적도 있었다. 그쪽도 특이하게 모든 걸 주입한 주인과 전혀 닮지 않은 말투를 사용했기에 꽤 흥미를 가지고 관찰했던 경우였다.

 “당신은 언제쯤 나를 봐 줄까요?”

 때로는 아서도 지칠 때가 있었다. 주인을 반영한다는 말에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애초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보답 받지 못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언제가 되었든 파국을 맡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에요.”

 4년을 인내했는데 몇 년을 못할쏘냐. 과연 몇 년안에 해결이 되기는 할 건지부터가 불분명했지만 한 번 책임진 이상 중간에 관두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다. 다행인지 팬드래건 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아서는 착실하게 가주의 자리에 향하고 있으니 모드레드에 조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삶에 큰 문제는 없다.

 아서는 가만히 모드레드를, 그의 얼굴 왼편을 차지하는 문신을 바라보았다. 의문의 제작자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그를 창조한 걸까. 그래도 아서는 그에게 감사했다. 비록 서로 마주 보고 대화도 못하지만 분명 아서의 삶은 모드레드가 나타난 이후부터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아서는 그대로 모드레드의 이마 부분에 있는 문신에 살짝 입 맞췄다.

 “.......나 뭐하는 거야...”

 천천히 입술을 떼며 아서는 자조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멋대로 굴다니. 엘이나 갤러해드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사단이 났겠지만 다행히 방에 있는 것은 아서와 모드레드 뿐이다. 그래서 모드레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뜨이는 것을 본 것도 아서뿐이었다.

 서서히 드러나는 선홍색의 눈동자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였다. 홍채보다 진한 다크 레드의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더니 곧 바로 눈앞에 있는 아서에게 고정되었다.

 “모드...레드씨...?”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침착해야 해. 그저 기다렸던 순간이 찾아온 것뿐이야. 스스로를 세뇌하다시피 자기에게 주문을 거는 아서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모드레드의 뺨을 쓰다듬자 서늘하고 커다란 손이 감쌌다.

 “........”

 조금 갈라진, 기분 좋게 낮은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아서는 마치 먼 곳에서 듣는 것처럼 느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직시하고만 있는 그에게 모드레드가 희미하게, 하지만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동안 내내 참아왔던 마음을 고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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