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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아나(@glakdhkfl0123) 님의 수려한 원글은 여기.
아무리 자초했다지만 너무한 거 아닙니까 손풀기는 무슨 죽는 줄 알았습니다요
“완전 반대되는 존재네요.”
달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투명한 폰이 격자판 위를 한 칸 이동해 원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다른 폰을 쓰러트린다.
“흑과 백. 극과 극이니까.”
뒤질세라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주교가 달려온다. 이제 막 끝난 전투의 승리에 심취해 있던 폰의 숨은 그렇게 끊어졌다.
어둑한 성내, 유일하게 창이 존재하는 곳에서 두 사람 사이에 펼쳐진 전장은 막 어지러운 국면에 접어든 차였다. 최전방에서 들쑥날쑥 산 모양을 그리던 폰은 대부분 전멸했다. 말 탄 기사와 주교가 나설 차례였다. 늘 그렇듯 드리워진 햇살에 둘러싸인 채 커다란 눈동자를 깜빡이며 골몰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곧, 소년의 하얀 손이 명령을 내렸다. 쏟아지는 빛을 받아 반짝이던 투명 크리스털의 나이트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나머지 반편의 전장으로 파고들었다. 과감한 움직임이었다.
태양에게 사랑받는 아이는 히나타라는 제 이름처럼 양지만이 있을 곳이었다. 거위 털 가득 담은 벨벳 쿠션이 여럿 놓인 창가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주된 일과였으며 벗어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심지어 빛이라는 것과 거리가 먼 그 또한 종종 초대해서는 카드니 보드 게임이니 함께 하는 무언가를 하길 원했다. 음침할지언정 거대하고 넓은 성의 주인을 손짓으로 오락가락 하는 건 아이 뿐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빛의 영역과 가장 맞닿은 그림자의 영역 끄트머리에 앉으면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자연스럽게 따라 웃을 만큼.
“서로 싸우기만을 위한 존재인가요.”
“상극이지.”
다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흑의 나이트가 움직였다. 꽤 멀리 나간 비숍을 원호하면서 적침을 막아내는 최적의 위치였다. 윽... 아이의 입에서 곤란한 듯한 신음이 흘렀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움직였거니, 했겠지만 몇 번이고 대전을 거듭하며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패스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체스에서는 모든 움직임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컸다. 한 턴에 하나씩 말을 움직인다는 제한에도 불구, 왕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수만 있으면 승리한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보아가며 그에 맞춰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게임, 그게 체스다. 백 혹은 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무의미한 움직임. 바꿔 말하자면 사령관이 누구냐에 따라서 무수히 다른 전략이 나올 수 있는 싸움이다. 초반에는 일방적이었던 전적은 제법 비등해져 있었다. 히나타만이 생각할 법한 놀라운, 또는 엉뚱한 수에 말리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가 그에게 벌칙을 내린 횟수만도 벌써 양 손가락을 꼽고도 남는다. 벌칙이라 봤자 딸랑 먹고 싶은 음식을 마련하거나 새로운 게임을 구비해 달라는 정도였지만. 아이가 졌을 때에는 더욱 신통치 못했다. 그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걸로 만족했으니까.
“우리처럼?”
예상치 못한 퀸의 움직임에 까만 크리스털 나이트가 전장에서 치워졌다.
제 손바닥 안에서 전리품을 굴리는 아이는, 그러나 언제나 보아오던 우쭐한 미소를 띠고 있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멈췄던 건 허를 찔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똑바로 그를 응시하는 시선이 묵직했다.
“상극이 아니라 우리는.. 음... 공생, 이랄까.”
“공생은 아니죠.”
룩을 옮기는 그 즉시 퀸은 안전선 안쪽으로 되돌아갔다. 만만치 않다. 오히려 그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예이, 예이. 능청스런 말투로 양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자 이번에는 찌릿, 하고 따끔한 시선이 날아온다.
“대왕님이 살아가기 위해 나나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거니까.”
조그마한 입이 불퉁 튀어나온 게 무척 귀여웠지만 가슴 한켠이 싸늘해지는 걸 막지는 못했다. 마른 침을 삼키는 입안이 씁쓸했다. 직시하길 꺼려했으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필요로 했다.
아직 살아있는 다른 나이트를 움직여 다음 차례 움직일 아이의 나이트를 봉인함과 동시에 폰을 잡기 위해 너무 멀리 나갔던 비숍의 안전로를 확보하자 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이럴 때 히나타에게는 무슨 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 턱을 괴고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적대할 수밖에 없는 사이지만 아이는 제 발로 그를 따랐다. 마을에서 무슨 소문이 돌건 끄떡없이 웃었고 사랑스러운 온기로 품을 데워주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척을 해 오던 그였는데 갑작스레 날을 잔뜩 세우고서 엄연한 사실을 끄집어 올리다니.
애초에 바랄 수도, 손에 넣을 수도 없는 햇빛(日向)을 갈구한 것부터 오만이라는 걸까.
어느 덧 그림자의 영역이 넓어진 체스판 위에 쿵, 하고 룩이 무너지는 소리가 퍼졌다.
“...난 돼지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퀸을 집으려던 그의 손을 멈췄다. 아연함에 고개를 들자 혼란에 겨워하는 아이가 입술을 깨물고 있다. 어떻게든 버티려는 걸로 보였으나 젖어 들어가는 눈매는 숨길 수 없다.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돼지, 닭, 소. 좋아해요. 하지만.”
오히려 물러나버린 퀸을 틈타 폰이 치고 들어왔다. 쾅. 거친 놀림이었다.
“사랑할 수는 없어요.”
기계적으로 낚아챘다. 위풍당당하게 십자가를 머리에 인 검은 여왕은,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도드라질 것도 없었다. 아무리 고급 크리스털로 빚은 고운 자태라 할지언정 빛이 없으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왕님.”
당신과 내가 말하는 ‘사랑’은 같은가요.
기어이 흘러넘치고 만 말은 눈물 대신 흑백의 전장에 떨어졌다.
처음부터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란 먹는 자와 먹이에 불과할 뿐이건만, 무시로 일관하려 했다. 오히려 애탈 만큼 연모하는 마음으로 하여금 언젠가 그에게 먹혀도 좋다 생각했었다. 일련 보이는 다정함은 기만에 불과하고 어리석게 속아 넘어간다 할지라도 행복할 터였다.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관점이 다르면 내리는 정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마주 잡은 아이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그는 그저 멍하게 보고 있었다.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게 정답이다. 마왕이라 일컬어지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만큼 멍청한 얼굴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해서 먹고 싶어지는 것과 먹이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정작 눈앞에 있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가 안타까운 한편 사랑스러웠다. 너무하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사냥거리를 지척에 두고 사랑을 말하며 애지중지한다면 자명할 텐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그의 입에 호선이 돌아왔다. 입에 내뱉자마자 현실로 구현된 불안에 눈도 못 마주치는 아이의 진영에 손을 뻗었다. 최후의 폰에 얹힌 검지가 의아했던 걸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던 히나타가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끝까지 가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당당하게 외쳤던 게 누구더라.”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가 제 폰과 그늘진 영역의 끝을 번갈아 보더니 작은 탄성을 올렸다. 눈에 띄게 돌아오는 화색. 아직 눈동자는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아마 남은 건 찌꺼기 정도일 것이다. 자양분 삼아 도약하여 끝에 도달했을 때 아이는 어떻게 변모할까. 그 정도는 추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Promotion (승격) - 폰이 상대 진영의 끝에 다다른 경우 폰과 킹을 제외한 나머지 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체스 특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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