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사 트라팔가 로는 자신의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손을 놀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좁은 수술대 위에 펼쳐 놓은 시트는 끊임없이 번져나가는 피로 너저분하고 이리저리 음침한 기계들이 엉키고 섥혀 있는데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는 창백한 몸뚱아리 하나와 투박한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혈관 하나하나 봉합하는 손 한 쌍 뿐.
 머리는 자신의 이명(二名)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조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가 없다. 의사로써의 본능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부에서 경종을 울리는 그 무엇인가.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생명줄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그리고 전투보다 힘겨웠던 싸움의 결말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비록 물리적일 뿐인 승리가 되겠지만 그 앞의 일은 그 때 생각하면 된다. 로는 다시 한 번 실을 팽팽히 잡아 당겼다.
 


 먼 곳에서 나는 굉음을 들으며 트라팔가 로는 손에 들린 걸 내려 보았다. 빨간 띠가 둘러진 밀짚모자. 시간이 기억을 새기듯 빳빳함도 덜하고 지워지지 않을 흔적도 곳곳에 있었지만 소중히 다뤄졌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모자조차 덩그마니 남겨두고, 루피는 날뛰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작 중이었다.
 기적 그 자체였다. 해군 본부에서 입은 상처도 심했지만 로가 더욱 애를 먹었던 건 신체 ‘내부’에 누적된 상처였다. 불과 몇 년 사이 억대 상금을 목에 걸었으니 그간 헤쳐 온 난관과 전투는 남들 배 이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에도 너덜너덜해진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케이스를 봐온 로도 그가 눈을 뜨자마자 호흡기를 떼어 내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능력자들의 대결은 언제나 로에게 흥밋거리였다. 세계에 존재하는 악마의 열매는 종류는 많아도 오직 한 개씩만 존재한다. 능력자의 능력으로 인한 특이한 몸의 상처는 당연히 접하기 쉽지 않다. 특히 몽키.D.루피처럼 전신이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경우는 외과 의사에게 있어서 꼭 연구하고 싶은 진기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 그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집도하던 내내 로의 손끝에서는 살려는 본능이 느껴졌다. 대단한 출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던 맥박은 죽음의 의사라고 일컬어지는 로마저도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만들었다. 다른 누군가였다면 사람의 생명은 뒷전으로 미루고 연구에 정신이 팔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너지는 정신에 반할 정도로 살려는 강한 본능이란 도리어 저주다. 어중간하게 무너질 바에야 차라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게 나았다. 백안으로 앞뒤 분간 못하며 달려 나가는 루피는 측은하기까지 했다.
 다시 한 번 터지는 굉음에 로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몸은 현세에 있는데 마음은 사후를 좇고 있는 그는 트라팔가 로의 마음에 든 그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장이 아니다. 씁쓸함이 입안에 베어 나왔지만 로는 모자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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